An aesthetic & philosophic channel, so it also focuses on criticizing ugly things.
I strongly reject Islam & any other similar cultis. If u mind, block me plz.
1722년경 조선의 청년 선비가 청나라에서 서양인 신부를 만난다. 그리고 천주교와 유교의 통하는 점을 논한다.
이기지가 서학에서 유학적 이미지를 끄집어 내는 것은 마테오 리치의 초상화에서 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교회인 북당에서 불란서 신부인 장 밥티스트 레지(雷孝思 Jean-Baptiste Régis)를 만난 이기지는 레지 신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장 밥티스트 레지 신부:
“이번 다행스런 만남에는 천주의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모두 천주께서 지으신것이니, 사해(四海)가 모두 서로 형제가 됩니다. 비록 서로 수만리 떨어져 있어도 또한 형제인 것입니다.”(일암연기권4, 10월 28일, 28b-29a: 此番幸會 俱有天主深意我們人類 俱係天主所生四海盡屬弟兄相去雖萬里亦 弟兄也.)
레지 신부는 <논어 안연편(안연은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중 한사람이다)>에서도 나오는 동포주의, 박애주의를 내세우며 기독교적 형제애를 강조한다.
이에 화답한 이기지의 답장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이기지의 대답을 들어보자!
이기지:
“사해(四海)가 모두 형제라고 하신 것은 참으로 확실한 말씀입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백성은 나의 동포요, 무릇 천지간에 둥근 머리, 가로 눈을 가진 백성은 모두 내 동포 형제라고 했습니다. 서해(西海)와 동해(東海)를 가르지 않고, 다만 하나의 마음만을 귀하게 여겨 서로 벗하고 사랑할 뿐입니다.”
유교가 베이스인 이기지의 사고관에서는 오직 공자, 맹자의 레토릭으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레지 신부가 언급한 기독교적 박애관인 사해형제(四海兄弟) 코멘트를 송나라 유학자 장횡거의 ‘백성은 나의 동포(民吾同胞)’라는 말로 되받아쳤다.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천주학과 유학 간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주)
이기지가 방문하기전인 1603년경 마테오리치는 중국어로 번역한 <천주실의>라는 천주교 교리서를 발간했다.
당시 천주실의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지적호기심을 자극하여 명나라 지식인 층에서도 많이 읽혔다고 한다.
한국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천주실의는 상 · 하 2권. 모두 8편으로 나누어 174항목에 걸쳐 서사(西士)와 중사(中士)가 대화를 통하여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가톨릭교리서이며 호교서(護敎書)이다.
중사는 중국사람을 대변하는 박학다식의 학자이고, 서사는 가톨릭사상과 스콜라철학을 겸비한 서양학자로 저자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전자의 입을 빌려 전통유학의 사상과 불교 · 도교를 논하게 하고, 후자가 스콜라철학과 선진공맹(先秦孔孟)의 고전을 들어 천주교의 교리를 펴고, 그 사상을 이론적으로 옹위(擁衛)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 풍토는 청나라에서 생활한 천주교 신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명나라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 조선의 지식인과 청나라에서 생활한 프랑스 신부의 생각이 통하는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글 출처
오른쪽 그림은 서양인 천주교 신부를 그린 청나라 시대 그림.